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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스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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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군납 (1958~1963) === 1958년 [[1차 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는 더운 전선에서도 녹지 않는 고열량 휴대식량을 공모했다. 윌리스는 코코아버터의 일부를 경화 식물성 유지로 바꾸고 분유와 귀리가루를 섞어 녹는점을 크게 높인 초콜릿 바를 내놓았고, 이 제품이 1958년 11월 '필드 바(Field Bar)'라는 이름으로 전투식량에 채택되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맛"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한여름 전선에서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 하나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1억 개가 납품되었다. 윌리스는 건빵과 분말 음료도 함께 납품했다. 1961년 윌리스는 파산 직전의 지역 병입회사 노바 보틀링을 인수했다. 노바 보틀링의 콜라 '퍼시픽 소다'는 동네 가게에서나 팔리던 음료였지만, 윌리스는 국방부와 "전선 어디서든 병사 한 명에게 콜라 한 병을 5센트에"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후방 기지 14곳에 이동식 병입 공장을 세웠다. 병입 공장의 건설비 상당 부분은 군수 예산으로 충당되었다. 전쟁 5년 동안 윌리스의 매출은 23배로 늘었다. 1963년 [[오로아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전선에서 필드 바와 퍼시픽 소다를 먹고 마신 수십만 명의 제대 군인이 윌리스의 첫 번째 전국 단위 고객이 되었다. 윌리스는 필드 바를 민수용으로 다시 배합해 1964년 시판했고, 퍼시픽 소다는 1960년대 중반 루이나 탄산음료 시장 1위에 올랐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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